남양주에 있는 ‘공빈 김씨’의 무덤인 “성묘”에 갔다.
공빈 김씨는 조선 14대 선조의 후궁이자 15대 광해군의 사친(私親, 생모)이다.
1553년(명종 8)에 태어나 선조의 총애를 받아 임해군과 광해군을 낳았지만 25세에 세상을 떠났다.
광해군은 즉위하자 생모 공빈 김씨를 ‘자숙단인공성왕후(慈淑端仁恭聖王后)’로 추존하고
사당은 봉자(奉慈), 성묘를 ‘성릉(成陵)’으로 추봉해 왕릉에 맞게 석물을 다시 조성하고 종묘에 신주를 모셨다.
1613년에는 광해군은 책봉 주청사(策封奏請使) 박홍구(朴弘耉), 이지완(李志完)을 파견하였다.
1615년(광해군7) ‘경렬(敬烈)’, 1616년(광해군8) ‘명헌(明獻)’의 존호를 올렸다.
1617년에는 광해군은 다시 명나라에 책봉 주청사를 보내 책봉 고명을 받았다.
이로써 ‘경렬명헌자숙단인공성왕후(敬烈明獻慈淑端仁恭聖王后)’가 되었다.
풍정도감의궤는 십여 년 만에 졸업하게 해주고 더 큰 꿈을 꾸게 했다.
강사 면접에서 받은 질문을 계기로 통학하던 때를 생각하니 갑자기 막막해진다.
매일 매일이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는데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풍정도감의궤는 그렇게 내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노력하고 성장하다는 시작이다.
어제보다 더자란 구자란은
‘늦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 ‘멋진남편 수원흥부'를 만나
세 딸, 지민*효민*규리를 낳은 것과 대학교에 진학한 것이다.
해설을 통해 문화유산의 역사와 가치를 알리는 ‘우리궁궐길라잡이'를 시작으로
‘조선왕릉길라잡이(의릉*태릉*선정릉*헌인릉)’로,
역사여행작가, 전자책 출판 도슨트, 평생학습강사, 국제도슨트(현재 강사 과정),
그림책강사, 체험학습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장과 박물관 그리고 미술관
틈나는 대로 현장과 박물관을 답사하고 보러 다닌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본인 몫이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내가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받은 만큼 ‘배워서 남주는'늘 어제보다 더자란 구자란이기를 바란다.